피난촌도 피하지 못한 학살, 1년간 1500명 살해, 8700명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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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쿠데타 뒤 첫 주말이었던 지난해 2월 7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7일 미얀마 군부의 공격용 헬리콥터가 동부 카야주 프루소에 나타났다. 헬리콥터는 탄두에 다량의 쇠구슬을 넣은 포탄인 ‘유산탄’을 피란민촌을 향해 발사했다. 미얀마 독립 언론 <미얀마 나우> 등에 따르면 이 공습으로 10대 자매와 50대 남성이 숨졌다.

상황을 목격한 현지 자원봉사자는 <미얀마 나우>에 유산탄이 “자매가 자고 있던 건물에 떨어졌다. 그들(군부)이 무자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피란민까지 쫓는 것이냐. 그들은 여기(캠프)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프루소 피란민촌은 지난해 연말 인근 모소 마을에서 벌어졌던 미얀마 군부의 학살을 피해 온 700여명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난 공습 이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캠프를 떠났다. 자원봉사자는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정부를 전복한 지 1년이 지났다. 2016년 봄 출범한 아웅산 수치의 민간 정부는 군부의 지독한 견제에 시름하다 5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후 군부는 공습, 학살, 방화 등의 잔인한 수법을 선보이며 저항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 타이에 본부를 둔 미얀마 민주화 단체가 발행하는 온라인 매체 <이라와디>는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 뒤 지난해 3월 이후 최근까지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해 카야·친·카친·카렌·샨주 등에 30차례 이상 공습을 했다고 전했다.

군부가 이런 잔혹한 탄압을 하고 있는 것은 쿠데타 이후 미얀마 시민사회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군부는 쿠데타 당일 새벽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을 구금하며 손쉽게 정권을 손에 넣은 듯 보였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전체 선출직 의석 중 83%를 차지한 2020년 11월 총선에 부정이 있었다며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선언했다. 1988년 민주화 항쟁인 ‘8888항쟁’ 때 군부의 탄압으로 수천명이 희생된 역사를 가진 미얀마에서 군부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은 쉽지 않아 보였다. 실제 군부 쿠데타 직후엔 밤에 발코니에서 냄비나 쟁반 등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이른바 ‘소음 시위’와 같은 소극적 저항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부터 의료진, 공무원, 교사 등의 업무 거부 운동인 ‘시민 불복종’ 운동이 시작됐다. 거리에서도 소규모 시위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쿠데타 뒤 첫 주말인 2월7일 최대 도시 양곤에서 10만명이 거리를 메운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이다. 저항운동이 들불처럼 번지자 군부는 자국민에게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쿠데타 한달여 뒤인 3월3일에는 ‘모두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19살 여성 치알 신이 제2의 도시 만달레이에서 시위에 나섰다가 머리에 군경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같은 달 23일에는 7살 여자아이가 집에서 아버지 품으로 뛰어가다가 군이 발사한 총에 맞아 숨졌다. 나흘 뒤인 27일 시위 때는 무려 110명 이상이 숨졌다. 미얀마 인권단체인 정치범지원협회(AAPP) 집계에 따르면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경에 살해된 이들은 지금까지 1500명에 육박하고 체포된 이는 8700명 이상이다.

군부의 잇단 유혈진압 이후 양곤과 만달레이 같은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는 일단 잠잠해졌다. 그러자 일부 시민들은 소수민족 무장조직에 합류를 시작했다. 민족민주동맹 인사들은 지난해 4월 소수민족까지 아우르는 국민통합정부(NUG) 출범을 선언하고 그다음 달인 5월 시민방어군(PDF) 창설도 밝혔다. 국민통합정부는 소수민족 무장단체와의 연대를 모색하며 지난해 9월 “국민 방어전쟁이 시작됐다”며 군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다민족 국가인 미얀마에서 다수 버마족 위주의 군부 정권에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국경 지대에 맞서는 내전은 이전부터 수십년 동안 이어져 왔다. 여기에 미얀마 민주화 세력이 합세한 것이다. 지난 17일 헬리콥터 공습이 벌어진 프루소 난민촌이 있는 카야주는 소수민족인 카렌니족의 무장단체가 이전부터 활동하던 곳이다. 쿠데타 이후 카야주에서 반군부 활동은 더욱 강해졌고 그에 따라 군부의 탄압도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라와디>는 카야주 인구 30만명 중 절반 이상이 지난해 5월 이후 피란민이 됐다고 전했다. 미얀마 전체적으로 쿠데타 이후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5일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는 타이 매솟에서 미얀마 난민들이 구호품으로 식료품을 받고 있다. 매솟/AFP 연합뉴스

크리스티네 슈라너 부르게너 유엔 미얀마 특별보고관은 지난해 10월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미얀마의 상황을 “내전”이라고 규정했다. 두와 라시 라 국민통합정부 대통령 대행은 74주년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연설에서 “지금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군사 독재를 완전히 종식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전쟁, 방어적 전쟁을 하는 것이다”라고 다시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미얀마 군부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미얀마 군부 정권의 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하며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지만, 아직 똑 부러지는 효과는 관찰되지 않는다. 미얀마는 1962년 네 윈의 쿠데타 이후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채 보낸 시간이 길어 제재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또 러시아와 중국이 미얀마 군부를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 등 미묘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맡은 캄보디아 훈 센 총리는 지난 7일 미얀마 수도 네피도를 방문해 민 아웅 흘라잉과 회담을 했다.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교장관은 지난 13일 “훈 센 총리의 미얀마 방문은 군정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캄보디아는 아세안 국가 가운데 가장 친중 행보를 보이는 나라여서 훈 센 총리의 이번 행보를 중국의 의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외신들의 분석이 이어졌다.

미얀마인들의 저항은 다양한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한 의료진 상당수는 시위 등으로 다친 이들을 비밀리에 치료하는 일에 참가하고 있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최근 전했다. 미얀마 군부의 보건부 차관 자리 제안을 거절하고 국민통합정부에 합류한 조 와이 소는 이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미얀마 상당수 의료 인력들이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반군부 투쟁에 계속 동참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정부와 함께하는 보다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며 “그런데 갑자기 쿠데타가 일어났다.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우리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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