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비밀을 찾아서: 한양과 치앙마이에 숨은 지배층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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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생산된다’는 말이 있다. 공간은 인간의 사회적 행위(실천)에 의해 생산된다는 뜻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도시공간을 보면, 부와 권력의 척도에 따라 위계화되며 국가의 개입, 즉 건축, 조경, 도시계획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도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도시를 만든 최초의 시점부터 누군가의 기획에 의해 정치사회적 동학 속에서 구성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누군가’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이다. 

각 나라의 대표 도시는 다른 도시들보다 정치사회적 동학이 더 작용했다. 본 기사에선 그 중 조선의 ‘한양’과 태국의 ‘치앙마이’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한양이 조선의 수도였던 것은 다들 알 것이다. 치앙마이는 과거 태국 북부 지역에 위치했던 ‘란나 왕국(Lanna kingdom)’의 수도였다. 

남한산성에서 본 서울 전경 / 출처-티스토리<아름다운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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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두 도시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두 도시를 설계한 이들은 어떻게 도시를 구성했을까. 

먼저 두 도시가 건설된 배경을 알아본 후, 각각의 도시 구성 원리를 알아보겠다. 한양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지 못하는 치앙마이에 대해 좀 더 깊이 말하려 한다. 본 기사를 읽은 분들은 언젠가 치앙마이를 여행한다면, 치앙마이의 매력을 훨씬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두 도시로 랜선 여행을 떠나 보자.    

조선의 도시 ‘한양’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

첫 번째 여행지, 조선의 ‘한양’이다. 

예로부터 한국 전통 도시의 입지 기준점은 자연환경, 특히 산이었다. 조선이 건국되던 14세기 말, 한양 도성의 기준점은 북악산이었고 그 아래 경복궁이 들어섰다. 조선은 불교가 지배 이념이던 고려와 달리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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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아래 위치한 경복궁 / 출처-블로그<ETERNAL MOMENTS>

물론 고려와 마찬가지로 산의 지세를 이용해 성곽을 구축하였지만, 한양은 개경과 달리 <주례> ‘고공기’의 도성 조영 원리에 따라 기획되었다. (주례는 중국, 주대의 관제(官制)를 기술한 경서이자 유가가 중시하는 경서로, 중국 역대왕조의 도성건설에 기본이 되었다)

이러한 도성의 형태는 왕도정치를 추구하는 관념적 틀, 즉 유교 이데올로기의 표상이었다. <주례>의 도성 계획은 엄격한 상하 구별에 따라 공간을 위계화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의 관계, 즉 천자제후의 관계에 따라 제후국 체제로 한양이 구획된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양은 위계상 천자의 도시가 될 수 없었다. 더불어 한양에 유교라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투영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공간을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한양의 도시 공간은 엄격한 신분제에 의한 차별적 질서의 유교적 세계관에 기초해 궁성부, 관서부, 시전부, 촌락부로 구획되었다. 이는 공간별 차별성과 위계성을 강조한 것으로 신분의 귀천과 그에 따른 차이가 투영된 것이다. 

조선의 도시계획이 유학의 이념에 충실히 따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는 한양의 ‘사대문’이다. 

아래 그림과 같이 사대문과 그 중앙에는 유교의 기본 덕목인 ‘인의예지신’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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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사방과 중앙에 새겨진 ‘인의예지신’ / 출처-이현군, 2009,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청어람미디어. 168쪽

①흥인지문(동대문)의 인(仁) 

②돈의문(서대문)의 의(義) 

③숭례문(남대문)의 예(禮)

④숙청문(북대문으로 ‘소지문’이라는 견해가 있음)의 지(智) 

⑤종로 보신각의 신(信) 

이와 같이 유교적 이념 원리가 새겨져 있던 한양은 역사적 단계를 거쳐 도시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모되었다. 세종로와 종로 일대가 중심부였던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에는 충무로와 명동, 남촌 일대가 중심부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여의도와 강남이 개발되면서 서울의 중심축이 양분되었다. 이후 일산과 분당을 위시해 서울 외곽과 경기도 일대에 여러 신도시들이 개발되면서 현재와 같은 경관을 자아내고 있다. 

태국의 ‘치앙마이’엔 어떤 의미가 담겼나

다음 여행지는 ‘북방의 장미’라 불리는 태국의 ‘치앙마이’다. 

최근 노마드리스트(nomadlist.com)에서 노마드들이 꼽은 여행지 1위로 선정되기도 한 치앙마이는 13세기 말 태국 북부 지역에 건국된 ‘란나 왕국(1292-1578)’의 수도였다. 

란나왕국.png

현재 태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북부 지역의 중심도시다. 치앙(Chiang)은 태국 북부지방 언어로 ‘성’(城), ‘도시’를 의미하며, 마이(Mai)는 ‘새로운’이라는 의미이다. 즉, 란나 왕국의 새로운 수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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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전경을 보면, 오른쪽에 삥 강(Ping river)이 흐른다. 방콕을 가로지르며 태국에서 제일 큰 강이 짜오프라야 강(Chaophraya river)인데, 이 강의 가장 큰 지류다.

한양이 유교의 원리를 담았다면, 치앙마이는 힌두교와 불교의 원리를 담고 있다. 치앙마이뿐 아니라 대륙부 동남아에 위치한 국가들은 고전 시기부터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 고전 시기 이 지역의 정치체는 도시(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만다라(mandala) 개념(혹은 은하계 정치체)을 담아 도시가 구성되었다.

산스크리트어 만다라는 ‘원’, ‘원반’을 의미하며 우주를 상징한다. 원형으로 된 만다라에는 하나의 중심(manda)이 있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주변(la)이 된다. 

만다라적 세계관에선 수미산(Mount Meru)이라는 산이 있는데, 수미산은 힌두교 및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는 상상의 산이다. 우주의 중심은 신들의 영역인 이 수미산에 있고, 그 주변에 인간의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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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형상도 / 출처-<Tambiah, Stanley J., 2013, “The galactic polity in Southeast Asia,” HAU: Jorunal of Ethnographic Theory, 3(3): 503-34. 505쪽>

이 만다라의 의미를 확장하여 정치체에 적용하면 중앙에 왕 혹은 지배자가 위치하며 그 주변에는 왕의 신민들이 위치한다. 원의 가장 바깥으로 갈수록 왕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그 경계는 다른 만다라 정치체와 중첩된다. 

당시 고전 국가의 주요 관심사는 원의 경계를 최대한 넓혀 경계에 있는 부유하는 인구들을 왕의 신민으로 포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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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치앙마이의 옛 지도이다. 치앙마이를 가로지르는 삥 강의 왼편에 치앙마이 도성이 해자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도성은 만다라 관념에 의해 기획되었다. 

만다라 관념을 정치체에 투영하면서 치앙마이 도성 중심은 불법의 구현자이자 불교 세계의 건설자인 ‘전륜성왕’의 영역을 의미한다. 그 주변에 신민들이 위치한다. 원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위치한다. 해자는 성곽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데, 만다라 질서에서 ‘물’은 바다를 상징한다. 이 만다라 정치체를 도식화한 형태가 위 만다라 형상도의 오른쪽 그림이다. 

이런 만다라적 세계관은 전근대 시기 태국의 우주론이었다. 서구 지리학의 수용과 함께 다른 공간 개념이 요구되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하였다. 이후 근대화와 국민국가 건설이라는 격랑의 세월을 거치면서 치앙마이는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태국의 개방적 속성에 지역의 지리적·역사적·문화적 특수성이 더해져 치앙마이의 도시공간 곳곳은 다양한 역사적 층위가 담겨 있는 매력적인 초국가적·다문화적 경관을 지닌 도시로 변화해 왔다. 

치앙마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소들

지금까지 란나 왕국 수도 치앙마이의 도시 조성에 담긴 거시적 의미를 알아봤다. 그럼 이젠 치앙마이의 도시 조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체적 장소 2곳을 살펴보려 한다.

각각은 ‘왓쩨디루앙’(Wat Chedi Luang)과 ‘도이쑤텝-뿌이 산/국립공원’(Doi Suthep-Pui National Par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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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쩨디루앙(Wat Chedi Luang) 전경. 가운데 일부가 무너진 대탑 ‘쩨디루앙’이 보인다.

먼저 ‘왓쩨디루앙’(Wat Chedi Luang)은 치앙마이 구시가지(old town)의 중앙에 위치한 사원이다. 14세기에 건설하기 시작해 15세기 중반에 완공되었다. 이 사원에는 많은 사람에게 유명한 대탑 ‘쩨디루앙’이 있다. 한때 90m에 달할 정도의 대탑이었으나, 1545년 지진으로 인해 탑의 상층부 30m가 무너졌다. 현재는 약 60m의 높이에 달한다. 

‘왓’은 태국어로 사원, ‘쩨디’ 탑, ‘루앙’은 왕실을 의미하므로, 왓쩨디루앙(Wat Chedi Luang)은 ‘왕실 탑이 있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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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탑 ‘쩨디루앙’. 계단 입구 양쪽에 물의 신 ‘나가’ 조각상이 위치해있다.

탑 중앙으로 가는 계단에는 탑을 수호하는 물의 신 ‘나가’(Naga)가 조각되어 있으며 사원 전반에 걸쳐 다양한 나가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도처에 널린 나가상을 통해 태국이 강과 바다, 수로를 기반으로 한 물 기반 문명임을 알 수 있다. 

 왓쩨디루앙에서 대탑 ‘쩨디루앙’과 함께 중요한 건축물은 바로 싸오인타킨(Sao Inthakhin, 인드라의 기둥), 즉 ‘락므앙’(city pillar)이다. 한국말로 옮기면 ‘도시 기둥’이라는 뜻인데, 이런 도시 기둥이 사원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태국인들은 이 기둥이 도시를 보호하고 번영시키는 도시의 중심이라 믿는다. 더불어 복을 기원하고 불행을 피하기 위해 이 신성한 기둥에 제를 지내고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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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므앙(city pi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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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에 있는 락므앙 사당 내부 모습.

이 락므앙은 13세기 말 치앙마이의 다른 사원(지금은 없어졌다)에 처음 설립되었으나, 1800년 왓쩨디루앙으로 옮겨졌다. 이런 락므앙은 치앙마이뿐 아니라 태국 고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락므앙에도 당연히 만다라 개념이 담겨져 있다.

락므앙은 만다라 정치체의 상징적 중심으로 태국 고대도시들의 중심에는 위치해 있다. 이를 인체에 비유하면 중심에 있는 배꼽(싸두, Sadu)에 해당한다.

락므앙은 태국의 땅을 관장하는 지신(地神)을 모신 사당으로 정령신앙에 힌두적 성격이 더해진 것이다. 왓쩨디루앙의 락므앙 사당 주변에서는 치앙마이의 번영을 기리기 위해 매년 5월경 6~8일 동안 인타킨 축제(Inthakhin festival)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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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타킨 축제(Inthakhin festival)

이제 치앙마이의 중앙인 왓쩨디루앙에서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응시해보자. 

해자에 둘러싸인 왓쩨디루앙의 서쪽에는 도이쑤텝-뿌이 산이 위치해 있다. 동쪽에는 삥 강(Ping river)이 있다. ‘도이’는 태국 북부 지역의 ‘산’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처럼 치앙마이는 도심에 해자로 둘러싸인 성이 있고, 그 성은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 보는 배산임수 지형으로 구획되어 있다. 

도이쑤텝 산의 ‘도이쑤텝-뿌이 국립공원’(Doi Suthep-Pui National Park)에는 치앙마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사원인 ‘왓 프라탓 도이쑤텝’(Wat Phrat That Doi Suthep)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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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프라탓 도이쑤텝(Wat Phrat That Doi Suthep)

‘왓 프라탓’의 의미는 ‘부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다는 뜻’이다. 1383년 도이쑤텝 산 중턱에 건축된 이 사원의 중앙에는 황금 대형 불탑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황금 불탑 주변을 돌면서 소원을 빈다. 

이 사원에는 부처의 사리를 운반하던 백상(白象)이 탑을 3바퀴 돌다 쓰러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백상은 불교에서 위용과 덕를 상징하는 동물로 흰 코끼리를 의미한다)

치앙마이의 영산(靈山)인 도이쑤텝 산에서는 해마다 ‘리양동 뿌쌔야쌔’(the feast for guardian spirits of the forest)라는 산신제가 개최된다. ‘뿌’는 할아버지, ‘야’는 할머니, ‘쌔’는 도깨비의 일종으로, 뿌쌔는 할아버지 도깨비, 야쌔는 할머니 도깨비를 의미한다. 

뿌쌔야쌔 이야기는 치앙마이의 선주민인 루와족(Lua)의 전설이다. 현재는 뿌쌔야쌔 산신제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치앙마이의 수호신인 이 두 산신들을 기리는 이 의례는 라마 5세 때(1868년-1910년)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중단되었으나 지역민들의 복원 의지에 따라 재연(再演)되었다. 현재는 매히야(Mae Hia) 마을에서 매년 5월 말 혹은 6월 초에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뿌쌔야쌔에게 소원을 빌고 있는 현지인.JPG

뿌쌔야쌔에게 소원을 빌고 있는 현지인

고고학적 유물이자 예술미를 지닌 가치 있는 문화유산, 서울과 치앙마이

지금까지 아시아의 두 도시 한양과 치앙마이를 여행했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치앙마이에 좀 더 집중해서 살펴봤다.

두 도시는 지배층의 의도에 맞게 형성되었으며, 도시 곳곳에 자신들의 권위를 표상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한양은 유교적 원리, 특히 주례 고공기의 도성 조영 원리에 따라 공간을 위계화하였다. 치앙마이는 불교적 원리에 기반해 도시 곳곳을 만다라적 세계관을 표상하고 불교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공간으로 기획하였다. 

이는 도시 공간의 위계화를 의미하며, 도심은 그 위계의 최정점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도시의 중심부였던 공간들이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퇴색되었다. 오래된 곳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닌 낡고 비루한 공간이 되었다. 

한양 도성이었던 서울 종로 일대와 치앙마이 중심부였던 올드 시티(old city)도 마찬가지다. 역사 속 오랫동안 중심이었던 이 두 공간도 한때 세월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두 공간은 다시 부활하였다. 오래되어 낡은 게 아니라, 오래되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성곽이 서울만큼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는 없다. 치앙마이만큼 해자와 성곽을 중심으로 수십 개의 매력적인 사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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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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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성곽과 해자

이 두 도시에는 시나브로 켜켜이 쌓여온 역사적 흔적들이 도심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 오래된 흔적들은 고고학적 유물이자 예술미를 지닌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다. 

이처럼 역사성 있고 미학적 매력을 풍기는 도시이기에 자연스레 예술가들이 몰려들었으며 자신들의 공간을 지역성이 물씬 풍기는 예술로 채색하였다. 여기에 행정적 지원도 더해졌다. 서울에는 도시재생이, 치앙마이에는 창조도시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서울은 물론이고, 치앙마이를 경험해 본 이들은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미 치앙마이를 경험할 사람이든 앞으로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든, 본 기사를 통해 서울과 치앙마이의 근본적 의미와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길 희망해본다.   

출처 :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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